그밖에

우리가 받은 영적 암소 아홉 마리

SolaFade 2018. 10. 21. 00:23

<기꺼이 낭비하는 사랑>


언젠가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한 의사가 아프리카의 한 마을에 들어가 그들을 섬기며 지냈다. 그 마을의 추장 아들은 누 가 봐도 매우 훌륭한 엘리트였다. 외국에서 유학 생활을 마친 추장 아들이 마을로 돌아오자 온 마을이 술렁였다. 과연 그가 누구 와 결혼하게 될지에 모든 사람의 시선이 쏠린 것이다. 그 의사 역시 궁금한 마음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다고 한다.

그 마을에서는 남자가 청혼할 때 여자의 집에 암소를 끌고 가서 하는 것이 풍습이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처녀는 암소 한 마리를 받았 고 때때로 두 마리를 받았다. 가끔씩 암소 세 마리를 받는 경우도 있으나 그런 경우는 매우 드물어 그 마을 처녀 중 몇 명 되 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추장 아들이 청혼하기 위한 차비를 차리고 길을 나섰다. 그 행렬을 보니 암소를 무려 아홉 마리나 끌고 가 는 것이 아닌가? 사람들은 모두 나와서 "역시 추장 아들은 달라. 누가 저 암소 아홉 마리를 받고 추장 아들과 결혼을 하게 될 까?"라고 웅성거리며 그 뒤를 따랐다. 그런데 추장 아들이 도착한 집은 너무나 의외였다. 몹시 가난한 집에다가 청혼 받은 처녀 역 시 병약한 외모에 영 볼품없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지켜보던 사람들은 다들 실망하여 "추장 아들이 정신이 나갔나보다. 저런 아가씨 에게 암소를 아홉 마리나 갖다 바치다니!" 하면서 수군거렸다.

그 의사는 본국으로 귀환할 때가 되어 그곳을 떠났고, 그 추장 아들과 그 처녀의 이야기도 어떻게 되었는지 듣지 못했다고 한다. 그 러다 오랜 시간이 흘러 그 마을을 다시 방문하게 됐는데, 그때의 추장 아들이 어느덧 추장이 되어 있었다.

추장의 초대로 그 집에 방문한 의사는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부인이 나와서 인사를 하는데, 예전에 봤던 그 볼품없던 모습이 아니었 기 때문이다. 그 때의 자신감 없고 초라한 아가씨가 아닌 무척 당당하고 아름다운데다 영어까지 유창하게 구사하는 그야말로 멋진 여성 이 되어 있더라는 것이다. 그 의사가 속으로 놀라워하고 있는데, 추장이 눈치를 챘는지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사실 그때 암소 한 마리면 충분히 혼인 승낙을 얻을 수 있었지요. 하지만 청혼의 순간에 암소를 몇 마리나 받았느냐가 한 여인에 게 있어서 평생의 자기 가치를 결정하는 일이라는 것을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제 아내가 평생 자신의 가치를 암소 한두 마 리 값에 한정하며 사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제 아내를 무척 사랑했기 때문이지요. 처음에 아내는 아홉 마리의 암소를 보고 무 척 당황하고 놀랐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는 가치를 아홉 마리의 암소에 걸맞게 하기 위해 정말이지 열심히 노력하는 것 같았습니 다. 저는 아내에게 공부를 하라거나 외모를 가꾸라는 등의 조언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있는 그대로의 당신을 사랑한다고만 말 했죠 그런데도 아내는 점점 더 아름다워지고 멋진 여성이 되어갔습니다."


<우리가 받은 영적 암소 아홉 마리>


이 이야기가 실화인지 아니면 감동적인 예화일 뿐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들으며 내 마음에 감동이 물밀듯 밀려왔다. 그러면서 문득 로마서의 이 말씀이 떠올랐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 8:32)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기도 여러 번이었고 살해 위협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환경 이 어려울지라도 그는 비굴하게 살지 않았다. 늘 당당했고 자신감이 있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이 말씀에 기록된 것처럼 자 신이 영적인 암소 아홉 마리, 즉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끼지 않으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구원 받았다는 확신이 그에게 있었기 때문 이다. 자기가 받은 구원의 가치가 실로 엄청나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그는 늘 당당하고 자신 있는 모습으로 복음을 부끄러워하 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말씀을 더욱 깊이 묵상하는데 이런 의문이 들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 분인데 우리를 구원하실 때 그냥 말씀으로만 하실 수도 있었을 텐데 왜 굳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시는 희생을 통해 우리를 구원해주셨을까?'

그러면서 깨닫게 된 것이 '아, 주님의 십자가가 바로 내가 받은 암소 아홉 마리구나!' 하는 것이었다. 추장의 아들이 암소 한 마 리만으로도 충분히 결혼할 수 있었지만 사랑하는 여인의 존재감을 위해서 암소 아홉 마리를 끌고 가는 거룩한 낭비를 했던 것처럼, 우 리 하나님께서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 주심으로써 우리가 다 그런 존재감을 갖기 원하셨던 것 이다. 그래서 비록 능력 없고 얼굴이 잘생기지도 않았으며 그저 볼품없는 존재일지라도 "나는 주님이 암소 아홉 마리보다 더 귀한 예 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주셔서 구원해주신 놀라운 사람이다!"라는 자부심이 우리의 긍지가 되게 하신 것이다.

우리 모두 이 사실을 마음 깊이 담아야 한다. 이것이 주님의 십자가 사랑, 아가페 사랑이라는 가장 강력한 소프트 파워이다.



- 삶으로 증명하라(이찬수 목사님)책 내용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