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종교: 과학(가설과 불확실) VS 믿음(정직한 이성)
이 시대의 시금석(어떤 사물의 가치나 사람의 능력등을 평가하는데 기준이 될만한 사물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은 ‘과학에 근거한 합리성’입니다. 그렇다면 과학은 무엇입니까? 국어사전은 과학을 “어떤 영역의 대상을 객관적인 방법으로, 계통적으로 연구하는 활동, 또는 그 성과의 내용”으로 풀이합니다. 객관성을 얻기 위해서는 실험과 증명이 필요합니다. 실험과 증명을 반복하여 동일한 결과를 도출해야 합니다. 그러나 실험으로 명확하게 알 수 있는 것은 매우 적은 사항에 불과합니다. 실험에 의해서 증명된 사항도 완전히 정확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과학은 논박이 가능해야 합니다. 과학 지식은 상대성과 반증을 기본으로 합니다.
학교에서 원주율(π)이 ‘3.14159’면 거의 정확하다고 하였지만 ‘정확한’ 것은 아닙니다. π는 3.14159265358979323846…입니다. 규정할 수 없는 π이기 때문에, 인간은 정원(正圓)을 측정할 수 없고, 그릴 수도 없다고 보아야 합니다. ‘지구 중력 가속도(g)’도 9.81m/s2 이라고 하지만 정확한 수치는 아닙니다. 호주 커틴 대학의 크리스찬 하트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은 지구의 중력 최소값은 페루의 와스카란산 정상으로 9.76m/s2 이었고 최고값은 북금적 근처의 9.83m/s2 로 두 값의 차이는 0.07m/s2 임을 발표하였습니다. 과학은 자기 무능과 오차를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차를 인정하는 과학은 진리의 시금석이 될 수 없습니다.
최첨단 과학의 시대로 정평된 지금에 와서 오히려 ‘합리’가 아닌 ‘윤리’가 강조되며, IQ에서 EQ, SQ(Social, Spirit Quotient) 등 다양한 지수들이 등장하였습니다. 과학과 윤리는 인간이 만든 허상이기 때문에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며, 자기 한계를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집 센 인간은 자기 한계를 절대로 인정하지 않으며 물러서지도 않으며 과학을 맹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학을 절대적 가치로 치면서도 윤리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것은 인간이 인간을 이해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구조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믿음’으로 진리를 증명하는 체계입니다. 이 믿음은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로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과학은 시대가 변하면서 바뀔 수 있고, 바뀝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2,000년이나 지난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고 변할 수 없습니다. 변화하는 체계에 지식을 세울 것인지, 변함이 없는 체계에 지식을 세울 것인지 결정하면 됩니다(마태복음 7:15-27).
참 학문은 자기 기초를 명확하게 말하는 것인데, 흔들리지 않는 기초를 확인하면 됩니다. 확고한 기초는 이 땅의 소산으로는 가능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선물인 믿음으로 가능한 체계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믿음 위에서 논리를 전개하는 것은 자기의 무지를 인정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주권(계시)으로 지식을 탐구하는 ‘중생된 이성, 정직한 이성’입니다. 한계(무능과 부패)가 명확한데도 인간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주는 지식 체계는 허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불확실한 과학에 근거한 학문(과학이나 철학)과 하나님의 선물인 믿음에 근거한 학문은 다릅니다. 기독교 학문은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종교와 학문을 이룹니다. 인간의 무한 가능성을 독려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겸손과 인내로 정진하도록 합니다(시편 37:24, 잠언 2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