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밖에

신앙과 종교의 차이

SolaFade 2018. 10. 14. 00:43

개인적으로 신앙과 종교의 차이점이 궁금해서 찾아보다가 제일 성경적인 설명을 찾아서 퍼온 내용입니다.

참고하시면 유익하실 겁니다.



<<신앙과 종교의 차이>>

임민철 목사(영등포제일교회)-“잃어버린 영혼들을 위하여”에서 2008-02-12


우리들이 신앙과 종교라는 말을 쓰고 있는데, 신앙이 있고 종교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에 다니는 사람을 가리켜 ‘종교를 하나 가졌다’ 말하는데, 그것은 잘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신앙과 종교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종교는 사람이 모든 것들을 주관하고 사람이 주인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는 ‘얼마나 잘하고 못하느냐’에 따라서 축복이나 저주를 받습니다. 그러니까 교회에 다니면서도 내가 열심히 봉사하고 노력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려 한다면 그 사람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저희 어머니는 오래 전부터 집안을 지켜 준다는 성주를 믿으셨습니다. 이른 새벽 아무도 다녀가지 않은 동네 샘물에 가서 목욕재계를 하고, 정화수(井華水)를 떠다 놓고 비셨습니다. 만약 목욕재계를 할 때 누가 보면 부정이 탄다고 해서 추운 날에도 이른 새벽에 일어나 정성을 쏟아 빌었습니다. 그렇게 정성을 지극하게 드려야 복을 받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사람이 정성을 쏟아서 복을 구하는 것이 종교입니다. 종교는 모양이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결국은 인간의 정성으로 복을 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은 말 그대로 ‘하나님을 믿고 바라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내 마음에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복을 내리고 저주를 내리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상관없이 당신의 뜻을 당신이 이뤄가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실 때 우리와 의논하지 않았습니다. 우주 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우리와 의논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얼마 전에 맹장이 터져서 입원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의사는 내 뜻과 상관없이 나를 마취시키고 배를 갈라 수술했습니다. 만약에 내가 마취되지 않고 맨 정신으로 수술대에 올라갔다면, ‘이렇게 해 달라. 저렇게 해 달라’ 할 것이기 때문에 의사가 안전하게 수술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의사는 내 뜻과 상관없이 마취를 하고 치료를 했습니다. 그것처럼 하나님은 우리 행위와 상관없이 당신의 뜻을 이뤄가시는 것입니다.


교회에 다니고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이끄시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자기가 결정하고 자기 정성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산다면 그 사람은 종교 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제가 설교할 때 ‘연보를 많이 하십시오. 기도를 많이 하십시오. 그래야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라고 한다면, 저는 종교를 가르치는 목사인 것입니다. 물론 이 말은 ‘연보를 하지 않아도 된다. 기도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연보하는 것이나 기도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속에 기도하고 싶은 마음을 주시고, 연보하고 싶은 마음을 일으켜 주십니다. 주님이 주시는 그 마음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우리는 죄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착하게 살 만한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제 내가 일하는 것 말고, 하나님이 우리 속에 일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삶 속에서 일하고 싶어하십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내가 일을 하면 고통이 오지만, 하나님이 일하시면 평안과 쉼이 온다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 8:6)


우리 생각으로는 결코 경건치 않은 자를 의롭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경건치 않은 자를 의롭다고 말하는 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의인은 죄를 안 짓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가 마음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죄인이라는 말은 죄를 짓는 사람이 아니라 죄가 마음에 있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의인’이라고 하니까 마치 죄를 하나도 안 짓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죄인’ 그러면 죄를 짓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난 행위를 보고 ‘착하다, 악하다’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행동만 똑바르면 깨끗하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 중심을 보시고 그 마음에 ‘하나님의 의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의인과 죄인을 나누십니다.


로마서 4장 4절에서“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롬 4:4)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일하는 자’란 자기가 한 것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삯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은혜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일한 것이 없는 사람들인데, 다시 말해 경건하지 않은 사람들인데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의롭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의롭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롬 4:5)일을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의로울 수 있겠습니까? 기도도 안 하고, 연보도 안 하고, 교회에도 안 나가고, 성경도 안 읽었는데 죄 없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우리 생각으로는 결코 경건치 않은 자를 의롭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경건치 않은 자를 의롭다고 말하는 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은 우리를 의롭다고 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그 믿음을 의로 여긴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마음에 당신의 의가 있는 사람을 가리켜 의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마 19:26)


예배는 하나님께만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는 목적이 무엇이냐에 따라 우상숭배가 될 수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 합니다.



<신앙인과 종교인의 차이>


두 사람이 수도원 앞길을 가는데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한 수도사는 “우산도 없는데 비가 오면 어쩌지” 하고 짜증스럽게 불평을 했습니다. 그런데 또 한 수도사는 “하늘에서 빗님을 보내 주시네.” 하고 반갑게 비를 맞으며 웃었습니다. 앞 사람은 종교인이었고 뒷사람은 신앙인이었습니다.


여기서의 종교인은 종교의 가르침을 단지 믿기만 하는 사람을 말하고, 신앙인이란 종교를 넘어서 가르침을 믿으며 실천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진정한 신앙인은 작은 것이라도 그것이 무엇이든 기쁜 마음을 나누는 사람입니다. 종교인은 종교의 틀 안에 있지만 사랑이 뭔지, 자비가 뭔지, 나눔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름뿐인 종교인과 진정한 신앙인의 차이가 여기에 있습니다.



<민속신앙과 종교의 차이>


부족단위의 신앙형태까지를 나는 민속신앙이라고 규정하고 싶습니다. 사회가 더 발달하여 같은 종족집단 안에서도 일정한 지배계급이 형성됩니다. 이 지배계급은 같은 신앙대상을 가지며 같은 공동체에 속한 다른 사람을 지배하는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그리고 보다 효율적인 지배수단을 찾기 위해서 그들이 속한 공통적인 신앙형태를 조직화하게 됩니다. 조직화된 신앙은 막연하던 그들의 신앙대상을 구체화하는 작업을 하게 됩니다.


이 작업의 결과 신조라는 것이 탄생하고 교리라는 것이 만들어집니다.


이 신조와 교리에 따라 신앙행위는 조직적이며 획일적으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것을 종교라고 나는 규정합니다.


종교는 바로 조직이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지배계급과 유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종교와 지배계급은 상생한다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피지배계급이 보존하고 있는 민속신앙과 종교는 같은 신앙형태이면서도 서로 적대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종교학자들은 흔히 신조와 교리로 조직화된 종교를 고등종교라 하고 그렇지 못한 신앙형태 내가 규정한 민속신앙을 원시종교라고 합니다.


내가 고등종교와 원시종교로 구분하기를 싫어하는 이유는 고등종교 속에 원시종교의 신앙형태가 조금도 달라지지 않고 고스라니 내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힘을 가진 종교는 모든 힘을 이용하여 물리력을 갖지 못한 민속신앙을 압살하려 합니다.


그것은~ 미신입네, ~토템입네, ~샤만입네 하면서 마치 진화하지 못한 원시인의 남아있는 습성으로 치부하고 박멸하려 합니다.


앞서 말했지만 그런 주장이 정당성을 가지려면 그들의 신앙에 내포된 모든 민속 신앙적 요소가 제거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상 고등 종교입네 하는 모든 종교에는 그들이 비하하고 압살하려하는 모든 민속신앙이 고스라니 내포되어 있다는 점에서 원시종교와 고등종교의 구분은 타당성을 잃고 있습니다.



종교와 신앙의 차이는 ? 신앙자료모음 | 2006/11/20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 신앙이라고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이미 이루어 주신 구원을 믿음(신앙)으로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밖의 모든 종교는 여러 가지 체험이나 선한 행위, 훈련 등을 통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유대인들은 율법을 준행함으로 하나님께 올라갈 수 있다고 가르치고 회교인들은 성지순례 등 종교적인 의무 준수가 그들을 신 앞에 나아가게 한다고 말합니다. 불교도들은 수련을 가르칩니다. 이 모두는 항상 인간이 아래로부터 하나님께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복음은 사다리의 방향을 바꾸고 구원의 방법을 바꿉니다. 성경의 중심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구원을 얻게 하려하심이라"(요한복음 3:16)라는 말씀입니다. 기독교의 신앙은 구원을 위해 스스로 어떤 행위보다는 하나님의 사랑을 빈 손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예수믿는 것은 쉽고도 어려운 것이다"고 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쉬운 이유는 예수님께 나아오기만 하면 모든 죄를 용서받고 새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려운 이유는 예수님께 자신을 잘 맡기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자기 힘대로 자기 소견대로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핵심은, 은혜를 통한 구원입니다.


기독교윤리와 일반윤리 차이점 ??? 성경가이드님 2007-07-14


성경에서의 기독교 윤리는 율법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국법인 것이지요.


일반 윤리는 사회 와 나라마다 각각 다 다릅니다.


그래서 성경의 윤리를 모든 나라에 정확하게 적용시킬 수 없다는 것이지요.


또한 성경말씀의 윤리는 사람들이 지킬수 없는 윤리입니다.



하나님, 예수님 누구를 믿어야 하나요? 로즈로라님 2006-08-06 22:51


하나님의 말씀은 차원적인말씀이랍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상태에 따라서 말씀이 차원적으로 다가오지요. 하나님은 삼위일체라고 하는데요, 성부하나님, 성령하나님, 성자하나님, 이렇게 세 하나님이 하나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위는 다르지만 그 안에 생명은 같다라는 것입니다. 성부하나님은 근본 본체 하나님이시고, 성령하나님은 말씀으로서, 성자하나님 , 즉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키우시는 보혜사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육체를 가지고 그 안에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우리를 구원시킬 분을 우리에게 보내시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와 직접연관이 되시는 분은 예수님이 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에게 구원자 예수를 보내시는데 우리가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만나야겠죠. 하나님, 예수님하면서 허상을 믿다가 언젠가는 그 믿음 이 실상으로 내 앞에 나타나기까지 부지런히 신앙 안에서 달려가야 한답니다. 예수를 믿는 것이 자신집 드나들듯 그렇게 간단 한 것이 아니란걸 알아야합니다 . 순수한 마음에서 �고 �으면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의 구원자 예수님을 만나게 해주신답니다. 그래서 말씀에 구하라 �으라 문을 두드리라고 햇답니다. 나의영혼을 살려줄 구원자를 바라고 소망한다면 하나님은 분명히 보내 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준 기도에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이제시작이니 한걸음 한걸음씩 의문을 가지고 열심히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예수를 믿고 교회에 나가는 목적이 세상 복을 위해서라면 굳이 교회가 아니라도 상관 없답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예수님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 랍니다. 인간은 어리석어서 눈에 보이는 것만 좇다가 한세상을 마치죠 그러나 하나님의 세계는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세계랍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이라고 할까요 . 이말에 감을 느낄 수 있을 때만이 하나님의 세계를 어렴풋이 알아 갈수있는 것이 우리인간이랍니다 모쪼록 열씸히 �아 갈수 있기바랍니다.



신앙과 종교 | 주기도문의 속뜻 2008.08.17 13:32   진리는 있다. 그 진리 종교 안에는 없다


지구상에는 많은 유형의 종교 가 있다. 

그 종교 들은 특정 신이나 성인의(종교 창시자 지도자 ) 이념과 사상을 근본으로 하여 그들의 일생동안의 행적이나 그들의 계시를 전승 교리화 하여 숭배 하며 그 교리를 모토로 자신들의 생활에 적용 인격화 하려 한다. 어느 종교 없이 오늘날까지 전승 하여 오는데 있어서 많은 과정을 겪으며 조금씩 그 본래의 모습에서 변질 되어 왔으며 그 과정에서 그 종교의 창시자 의 본래 의 뜻으로 부터 그때 그때에 세속과 세풍에 맞추어 변화 시킨다는 빌미로 인간 자신들의 권익과 편익을 도모코자 본래의 뜻으로 부터 윤리나 도덕성 또는 사상 이념을 변질 하여 가르치며 그 질서를 펴나가며 결국 공동체 라는 미명 아래 자기네의 주장에 맞지 않는 대상 들을 적대시 하며 혹은 그들을 대상으로 자기네의 교리를 강권 하려 하며 그것이 통하지 않을시에는 서로간에 살륙과 파괴도 불사 하는 전쟁으로까지 이어져 왔다. 


神 도 聖人들의 본의를 본다면 모두가 주변과 상호간 서로 이롭게 하는 질서를 가르치고 있으며 그 질서란 자신을 헌신 희생 함 양보 함으로써 

오히려 자신에게 그 혜택이 돌아오는 방법들을 제시 하고 있다.. 

그러한 맥락으로 위에서 말한 종교의 형상을 비춰 본다면... 오히려 종교들은 그 태초의 뜻으로 부터 왜곡 오류 되어 왔음을 어느 종교도 부인치 못할만큼 그 모습들은 형편없이 변질 되어있을것이다. 


필자는 그 종교의 반대말을 신앙이라 말하고 싶다. 

신앙이란 그 근본된 주체가 신이든 성인의 사상과 행적이든 간에 원초적 모습을 흩으리지 않은 상태로 보존 전승하려 온힘들 다 기울이는 삶을 지향 하는 상태라 해석 하고 싶은 뜻으로 부터 발상된 생각이다. 


이렇게 말한다면 대부분 

"과연 이세상에서 그어려운 신앙을 지킬 사람이 있겠느냐? 

반문을 할것이다. 

현세상은 피라밋 구조 의 계급사회 이며 약육강식의 형태로 그 사회구조가 굳혀져 버렸기에... 

그 구조에 편승 하지 않고서는 누구도 생존해갈수가 없다고 믿어 의심 할 바가 없을만큼 

그 참상은 신앙을 기초로 한 종교에 까지 만연 되어 버렸기에... 

오히려 본래의 신앙의 모습과 함께 사회적 구조까지 완전 변질이 되어 버린것이다. 


이곳 카페 에서는 성경의 

무오냐? 

아니냐? 

신은 과연 실존 하는가? 

인간 스스로가 만든 허상인가? 에 대하여 논쟁이 분분하다. 

그러나 필자의 깨달은 바로는 신의 존재 유무 가 그리 중요한것이 아니다 오히려 신의 존재 유무를 놓고 논쟁 하는 쌍방 그 어느쪽 이든 또하나의 종교성 형태에 속하여 자신의 아집을 존립 하려는 모습으로 밖에는 안보인다. 

현인 이나 지혜 인이라면 자신이 겪어 보지 않고 직접 눈으로나 오감을 통하여 확인 하지 못하는 바에 얽메어 계란이 먼저냐 닭이먼저 냐 하는 논쟁 모두 어느편이든 그것은 소모적인 일일뿐이란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또한 자신에게 와 주변의 대상들에게 서로 이로움을 끼칠만한 대안책 없는 이론적 논쟁을 일삼는 "작태" 자체가 참으로 한심 스러운 말장난에 불과 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인정 해야 한다.(물론 사람으로써 자신의 처해진 주변에 대한 질서 를 놓고 고심 하고 참과 허를 가려 보려는 노력을 기울려 보려 하지 않는것은 더욱 만물의 영장으로써의 사람의 권위를 도달치 못한것이라 겠지만...) 

그래서 필자는 나름 정리 해본 그 대안을 여러분께 제시 해보고자 합니다. 


먼저 신의 개념에 대하여 좀더 실질성 있도록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신들을 숭배 하는 종교들은 어디나 없이 신의 존재에 대하여 사람 보다는 더 전지 전능 하고 무소불능 하시여 그 형상은 막연하지만 이세상 어디에서 인가 항상 이세상을 지켜 보시며 관장을 해가시다가 결국의 세상의 지도자 로 오실 이 라 주장하며 그렇게 쇄뇌 하며 그렇게 믿으려 한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으로써는 그 또한 그러한 신의 개념을 인정하다 하지 않는다를 논하고 싶지 않다. 

다만 그분이 어떤 분이든 어떤 분이 아니든간에 그를 통하여 우리 사람들이 받아 들여져야 하며 그 받아 들인 뜻이 얼마나 이세상을 운영 해가는데 있어서 유익하며 두루 이로움이 끼쳐 질것이냐만이 중요 하다 여겨진다. 

그러나 여기에서 인간들이 그뜻을 오류 왜곡 하게 되어있는 비밀이 있는것 같다. 

신으로 부터 전해져 왔다고 믿고 있는 모든 종교들의 경전에서나 미래에 대한 예언서 들을 깊이 보면 그 문자 문맥 비사 들이 하나 같이 비유와 상징성으로 문자상으로만의 해석 이 용이하지 않다는 점인데.... 그러한 경전들을 사람들은 자기의 생각 이나 자신의 권익 보호 편익도모에 맞춰 제 멋대로 해석 해놓고 그렇게 가르치며 전승 해왔고 그-문자 상의 일이 악행이든 선행이든 미래의 세상을 도래 시킬 신의 뜻이니 무조건 그대로 따라 복종해야 한다는것이다. 

여기에서 결국 인간들은 본래의 그 신의 뜻이든 경전의 뜻을 왜곡 오류 시켰고 크나큰 과오들을 자행해 오다 보니 오늘날 모든 종교와 인성은 피폐화 되고 타락 되어 버렸다. (여기에 대하여 더 상세히 말하려면 논지가 흩으려 지며 문맥이 난해 해 지니 차후 다시 다루기로 한다) 

그러하니 이시대의 진정한 지혜인이라면 우선 경전이나 어느 종교의 교리에서 겉으로 들어난 비유와 비사 와 상징성들을 잘 분별하고 그것들에 대하여 함부로 판단을 내려버리고 숭앙도 비판도 섣부른 편에 서지 말아야 하겠다. 

어느쪽이 옳고 그름을 판단 하고 논쟁 하기 앞서 먼저 그 수많은 경전 들이나 교리 들이나 선인들의 사상 행적 중에 이세상을 두루 넓리 이롭게 하며 상호간에 평온하게 안식 하도록 공생.공유.공영 해갈 방안에 적중하는 이치 내포 하고 있는가를 깨달아 분별하고 그 질서에 편승 해가야 한다. 

또한 그것들이 불가불 언제인가는 이세상에 꼭 적용될 신의 질서 이며 그러한 질서가 이세상의 정책이 되어야 만이 악이 배재된 완전한 세상이 이룩된다면 재림 구세주나 미륵불이나 정도령 이나 사담 알라신이 와서 해주길 바라지말고 자신 먼저 깨닫고 그 질서를 펼쳐 나가는데 앞장 서서 자신으로 인하여 또한 자신과 뜻이 합하여 함께 할수 있는 무리를 이뤄가는데 스스로 이바지 해감이 옳을것이다. 

결론을 내린다면 추상적이며 막연한 신에 대하여 왈가 왈부 논하기만 하며 정작 대안책이 없으며 그 대안을 모색 하지 못한다면 누구나 없이 우둔한 자 이며 종교인에 지나지 못한다 그렇다면 진정한 지혜 인 이며 신앙인이라면 그 신이 말했고 이루고자 하는 세상이 무엇인가를 진정 고뇌 하며 

그것을 이루는데 힘을 합해갈 방안을 모색 하는것이 진정한 지혜 인이며 신앙인이다 란 것이다. 



출처 : http://blog.daum.net/qkshan/9229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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