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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생활을 하면서 크리스천으로서의 술문제... 참 골치가 아프다.
나도 주님 영접하고 구원받기 전까지는 그냥저냥 크리스천이라고 밝히지 않고 마셨었다.
이때는 잘 모르고 마신것도 있고 왜 마시면 안되는지에 대해서 궁금해 하지도 않았었다.
하지만 구원을 받고나니 자연스럽게 크리스천으로서 술먹는 문제에 대해서 궁금하기도 하고 먹지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현재 구원받은뒤로는 정확히 크리스천이라고 밝히고 회식자리에선 왠만하면 술을 먹지않으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
(술을 안먹게 된 동기는 나도 아래글과 비슷하다.)
아래글은 '하나님은 아무도 포기하지 않는다'라는 책의 저자 박효진 장로님이 어떻게 술과의 싸움에서 이겼는지에 대해서 간증하고 있습니다.
저 처럼 크리스천이면서 술 문제에 관해서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거 같아 도움이 되고자 책에 있는 내용중 술관련 간증을 이렇게 남깁니다.
부디 도움이 되서 술 안먹는 크리스천으로서 삶에서 당당해 질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술자리 기싸움###
전편 <하나님이 고치지 못할 사람은 없다>에 자세히 기록했듯이 1987년 1월 어느 날, 기적적으로 거듣나서 새로운 믿음의 눈 뜬 내게 하나님은 신앙인으로 사는 삶에 대해 참 많이 깨우치시고 순간순간 간섭해주셨다.
어제까지만 해도 세상 기준에 맞추어 먹고 마시고 노는 풍조에 젖어 있던 내가 성령님의 강권적인 개입으로 일순간에 모든 가치관이 바뀌어 경건치 못한 것들과 단절돼버렸으니, 주위 사람들보다 먼저 나 자신과 가족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매일 한 갑 반 이상 피워대던 줄담배를 내 결심이 작용하기도 전에 연기 냄새조차 못 견디도록 끊어주신 것도 놀라웠지만, 더 기막히게 감사한 것은 '폭탄주 제조공장 공장장'으로 명성을 날리던 내가 갑자기 술잔만 봐도 구토가 나는 지경에 이르러 술이라면 한 방울도 입에 대지 못하도록 주관하신 일이었다.
"야, 술 한 잔 먹는다고 지옥 가냐? 하나님이 그렇게 옹졸하시냐? 남들은 교회 다니면서 술만 잘 마시고도 신앙생활은 너보다 잘하더라."
직장동료나 친구들은 식사자리에서 으레 내게 술을 권하며 이렇게 시비를 걸어왔지만, 대답할 가치도 없어 그저 빙그레 웃으며 앉아 있노라면 그런 모습이 더 약 오르는 모양이었다.
"잘난 체하고 있네. 너 혼자만 예수 믿냐? 어차피 사회생활해야 하는 거 둥글둥글 살아야지. 별나게 굴지 마. 너만 손해야."
이처럼 숱한 조롱, 회유, 강압이 계속되는 가운데서도 꿋꿋이 이겨낼 수 있도록 하나님은 때마다 강한 손으로 나를 도우셨다.
- 박 주임, 한잔 해!
첫 싸움은 거듭난 그해 5월에 일어났다.
청송감호소 내에서 큰 행사를 무사히 마치고 기분이 썩 좋아진 소장이 전 간부 합동회식을 열었다. 20명에 달하는 간부 전원이 모였으니 자리가 퍽 거창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서로 수고했다는 덕담을 나누며 몇 번 술잔이 돌다 보니 다들 얼큰하게 취해갔다. 바로 그때 내 옆에 앉은 과장이 소주잔을 내밀었다.
"어이, 박 주임 한 잔해."
"아입니더. 과장님, 저 술 못 합니더."
"아니, 여태 잘 먹었잖아!"
"과장님, 이젠 아입니더. 저...예수 믿게 된 거 잘 아시잖슴니꺼."
고깝다는 투로 나를 잠시 노려보던 그가 다시 술잔을 내 얼굴에 디밀었다.
"그러면, 반 잔만 하지 그래?"
"아입니더. 반 잔도 안 됩니더."
과장의 인상이 험악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자존심을 억누르고 최후협상을 시도했으나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 나를 굳게 붙들고 계셨다.
"그럼 입술에만 댔다 떼."
"그것도 안 됩니더."
결국 과장의 인내는 한계를 넘어 좌우 아랑곳없이 고래고래 소리지르기 시작했다.
"야! 박 주임, 너 나한테 감성 있어? 유감 있어? 엉? 뭐 이따위가 다있어!"
"유감이라니요? 그런 거 없심더. 오해 마이소."
"보자 보자 하니 정말 싸가지 없는 친구야! 건방지게스리."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그는 아예 뒤로 돌아 앉아버렸다. 이 돌발사태에 모든 사람의 시선이 우리 둘에게 쏠리고 이내 술자리는 썰렁해졌다.
잠시 후, 이번엔 저쪽 건너편에서 다른 과장이 불콰하니 술 오른 음성으로 나를 불렀다.
"어이, 박 주임, 예장이요? 기장이요?"
나는 깜짝 놀랐다. 예장, 기장을 논할 정도면 교회를 잘 안다는 뜻인데...평소 그가 예수 믿는 사람이라곤 전혀 생각지 못했다.
"저...예장 합동인데요."
"아, 그래요? 나도 xx교단의 시무 장로요."
"그렇심니꺼? 과장님, 장로님이셨구만요!"
"그런데 박 주임, 신앙이란 것이 그런 게 아냐. 무슨 독불장군도 아니고 더욱이 율법적으로 굴어선 안 되지. 자유라는 걸 누릴 줄 알아야 하는 게요."
그러면서 은근히 재차 술잔을 권했다. 나는 야속한 눈빛을 던지며 사정했다.
"과장님 같으신 분이 저를 도와주셔야지 이러시믄 저는 우짭니꺼!"
"어이, 박 주임. 내가 잘 아는 장로, 집사들도 가끔 한 잔씩 하고 살아요. 이게 무슨 죄가 된다고 그래?"
"어쨋든 저는 안 됩니더. 과장님요, 한 번만 봐주이소."
아니꼽다는 눈빛으로 그도 결국 술잔을 거두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야, 박주임! 이 잔 받아!"
소리 나는 쪽으 쳐다보니 소장이 술잔을 높이 쳐들고 앉아서 나를 노려보고 있는 게 아닌가.
"예? 소장님, 저는..."
내가 주춤거리자 그는 자신의 모든 권위를 총동원해서 나를 몰아세웠다. 지금까지 두 과장과 주고받는 대화를 듣자하니 못마땅해 견딜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의 눈과 내 눈이 마주치는 순간 머릿속엔 수십가지 생각이 전광석화처럼 스쳐 갔다.
직장에서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기관장이 하급간부인 내게 술잔을 받으라고 강권하는 상황에서 과연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 것인가!
나는 소장에게 애원했다.
"소장님, 정말 저는 이제 술을 못마십니더... 제발 용서해주이소."
명령과 복종의 위계질서가 어느 조직보다 철저한 교정 직원에게 상관의 지시는 곧 법이나 마찬가지다. 한참 나를 노려보던 그가 내 눈빛에서 뭔가를 읽었는지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좋아, 정 그렇다면 할 수 없지. 마시지 않아도 좋으니 잔 받아서 앞에 갖다놓기나 해."
이제 한층 첨예한 싸움이 내 속에서 시작되었다.
두 마음이 뒤엉켜 갈등했다.
'일단 살았다. 까짓거 술만 안 마시믄 될 꺼 아이가. 술잔만 받아놓는 데야 어떠랴?'
'안된다. 더러운 것은 모양이라도 흉내 내지 말라꼬 성경이 말씀하시는데... 게다가 술은 잔도 건드리지 말라꼬 성령께서 내게 깨닫게 해주셨잖아.'
'그라믄 내가 소장님하고 얼굴 붉히고 싸워서 얻는 게 뭐꼬? 괘씸죄는 살인죄보다 더 무서운데... 근무평정(일 년에 두 번씩 근무성적을 평가해서 승진에 반영하는 일)할 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잘못 보여서 찍히믄 내만 손해 아이가. 그래, 술은 안 마시믄 될 테니까 잔만 받아놓자.'
그렇게 결심하고 술잔을 받으려는데 돌연 마음 깊은 데서 울컥하고 뜨거운 불기둥 같은 것이 치밀면서 내 영혼에 하나님의 말씀이 울렸다.
"네가 하나님을 두려워하겠느냐, 사람을 두려워하겠느냐?"
얼마나 놀랐는지!
'하나님과 사람 중에 누구를 두려워하겠나고? 그야 물론 하나님이지. 그렇다믄 답은 나 있는 거잖아?'
성령님의 감동은 계속되었다.
"네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래, 사람을 기쁘게 할래? 네가 사람의 비위를 맞춘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다!"
'맞아, 내가 거듭나는 큰 은혜를 입었는데 사나이가 믿음이 없으면 의리라도 있어야지. 하나님 앞에 부끄러븐 짓은 말아야제.'
그 순간 내린 결정은 단호했다.
"소장님, 죄송하지만 술잔도 받을 수 없심니더!"
일순간 실내에 무서운 긴장이 감돌았다.
소장은 이 기막힌 사태 앞에 안색이 돌변한 채 술잔을 들고 앉아있고, 양옆으로 자리한 과장, 계장들은 젓가락으로 앞에 놓인 접시속의 애꿎은 고기만 뒤적대고 있었다. 흥겨운 분위기를 망쳐놓은 저 또라이 박 주임을 내심 원망하면서...
주위를 둘러보니 내가 생각해도 대책 없이 썰렁해지고 말았다. 어떻게 다음 행동을 취해야 할지 나도 가닥이 잡히지 않아 잠시 주춤거리다가 그 자리에서 조용히 무릎을 꾾었다. 그리고 기도를 시작했다.
마침 그날이 금요일이라 구역장이던 나는 구역 식구들에게 늦어도 8시까지는 올 테니 모여서 예배드릴 준비를 하고 있으라고 당부해 놓았던 터였다. 기도를 시작하자마자 내 눈과 귀에 그들이 뜨겁게 찬송 부르는 모습과 소리가 생생했다.
얼마나 힘이 나던지!
중얼중얼 기도하던 음성이 나도 모르게 점점 높아졌고 눈에선 눈물이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하나님, 이제 제가 할 수 있는 짓은 다 했심더. 저로선 최선을 다한거 아시지요? 지금부터는 주님이 알아서 하이소..."
이미 내 기도 소리는 곁에 있는 사람들이 들을 수 있을 만큼 커졌다.
"하나님, 저는 제 기질을 잘 알고 있심더. 아무리 예수님을 믿는다 해도 술 한 잔, 담배 한 대, 고스톱 한 판 정도는 얼마든지 합리화해서 즐길 사람인 것을 압니더. '이 정도로 지옥 가겄냐? 상급이야 좀 깍일런지 몰라도 예수님의 보혈이 얼마나 위대하신데...' 운운하며 하고 싶은 짓 다 할 수 있는 사람입니더. 그런데... 그런데, 그런 저를 어떻게 이런 사람으로 만들어 놓았심니꺼? 고맙심더. 참말로 고맙심더!"
분위기는 더 이상하게 변하고 말았다.
소장은 술잔을 손에 든 채 눈을 지그시 감고 어금니만 질근질근 씹고 있고, 다른 선배 간부들은 묵묵히 접시 안의 고기만 집적대고, 분위기 망친 당사자 박 주임은 말석에서 펑펑 울어대며 기도하고 앉았으니...
한참 후에 이 어색한 분위기를 깨고 소장이 말문을 열었다.
"어이, 박 주임!"
"예, 소장님."
"이리 가까이 와 봐!"
나는 그의 옆에 앉으면서 솔직한 심정으로 말했다.
"소장님, 제가 서무주임으로서 소장님을 늘 편하게 모셔야 하는데요... 제 신앙문제 때문에 본의 아니게 괴로움을 끼쳐드려서 인간적으로는 참말로 죄송합니더."
그러나 갑자기 소장이 내 손을 꽉 잡더니 큰소리로 외쳤다.
"아니야, 난 자네 같은 충직한 부하가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해! 자, 분위기 살리자!"
그러고는 벌떡 일어나 두 손을 흔들며 "홍도야~ 우지마라"를 선창했다. 썰렁한 분위기에 짓눌려 괴롭던 참석자들도 기다렸다는 듯 같이 일어나 "오빠~가 있다"를 따라 부르면서 흥겨운 주석으로 변해갔다.
태산 같은 고비를 넘기고 나니 그 후론 참 수월했다.
술 따위로 시비 거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
그러나 소장이 새로 부임하거나 과장이 바뀔 때면 한 번씩 홍역을 치러야 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뜻을 굽히지 않고 어려운 싸움을 해올 수 있었던 것은, 분명히 밝히건대 내 의지나 결단이 아니라 내 안에서 도우시는 성령님의 능력이었다.
- 콜라 주세요
세월이 흘렀다.
주변의 모든 사람이 하나둘씩 나를 이해하고 용납해주는 분위기가 자리 잡혔지만 그래도 늘 외로웠다. 뒤에서 수군대는 비아냥도, 친하던 동료들로부터 따돌림당하는 소외감도 고통스러웠다. 새벽기도 시간에 벽에다가 머리를 박으며 통곡하기도 했다.
"하나님! 저한테 왜 이러십니꺼. 제가 목삽니꺼, 선교삽니꺼. 왜 저를 이렇게 힘들게 하십니꺼. 다른 사람들은 적당히 신앙생활해도 편하게 잘 사는데 뭣 때문에 저같이 보잘것없는 사람한테 이토록 큰 것을 요구하십니꺼!"
몸부림치던 내게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듯한 감동이 느껴졌다.
"네 고충을 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는 자는 이보다 더 큰 수고도 감수해야 한단다. 너 하나 예수 믿고 천국 가는 거야 쉽겠지만, 많은 사람에게 생명을 전하는 전도자에겐 엄한 삶의 절제가 필요하단다."
이 응답을 받던 날 나는 참 많이도 울었다. 그동안 쌓인 인간적인 서러움이 눈 녹듯 사라지고 그 자리에서 큰 감사와 기쁨이 찾아들던지!
요즘도 술 한 잔, 담배 한 대, 화투 한 번이 뭐 그리 대수여서 그 난리를 치느냐고 묻는 사람이 종종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심더. 그러나 나는 늘 '도미노 게임'을 떠올리지요. 우리 손자와 장난감 도미노를 조심조심 세워 나갑니더. 꾸불꾸불한 코스도 만들고 모형을 따라 다리 밑을 통과시키면서 온 방을 빙 둘러가며 세워놓은 뒤, 제일 앞의 작은 것 하나를 툭 건드리믄 주르륵 모든 도미노가 차례차례 다 쓰러지더라고요. 사소해 보이는 것 하나가 넘어지믄 바로 그다음 것이 넘어지고, 그리고 다음... 그러다 보믄 결국 내 중심까지 치고 들어와 심자가까지 내놓으라고 호령하는 일이 분명 벌어질 낍니더. 신앙은 하나 양보하면 결국 다 빼앗기는 무서운 싸움입니더."
회식이 있어 자리를 같이할 때면 상관들도 내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걸 이해하고 제안했다.
"어이, 박 장로는 사이다나 시켜 먹지그래."
"아입니더. 저는 콜라 마실랍니더."
"콜라는 해로워. 이빨이 삭는다는데 사이다 마셔."
"괘안십니더. 저는 원래 콜라 체질이라서..."
내가 굳이 콜라를 고집하는 이유도 있다.
혹시 그 회식자리 근처에서 누군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면, 믿음의 초입에서 방황하는 사람이거나 인생의 고통 가운데 하나님이라도 믿어볼까 망설이는 그가 '믿음으로 살려고 애쓴다는 박 장로'를 지켜보는데 흰 액체를 훌쩍 마신다면 그게 소주인지 사이다인지 어찌 알 것인가?
'아, 저 박장로도 상황에 따라선 높은 사람이 주는 술을 마다치 않고 마시는구나. 믿음이라는 것도 별 수 없는 모양이군!'
그렇게 생각하고 실족하면 그 한 영혼은 또 얼마나 긴 방황의 터널을 헤매야 할 것인가? 그래서 나는 콜라를 마시기로 작정했다. 아무리 멀리서 봐도 시커먼 액체는 간장 아니면 콜라니까. 내 경건과 유익을 위해서라기보다 누군가의 믿음을 배려한 절제임을 성령께서 가르쳐주셨기에!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에베소서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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