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고치지 못할 사람은 없다. 내용중..
모세는 출애굽한 백성들을 이끌고 시내 산에 도착하여 40주야를 금식하고 난 후 하나님을 만났고, 율법과 함께 놀라운 성막의 모형을 지시 받았다.
모세는 하나님께 받은 성막의 모형대로 브살렐과 오홀리압에게 성막을 만들게 하였다.
성막은 하나님이 지시하신 그대로 크기, 높이, 색깔, 재료 등등에 이르기까지 한치의 오차도 없이 만들어졌다.
드디어 성막이 완성된 날, 하나님은 그 곳을 통하여 놀라운 은혜를 내리시고 백성들을 만나주시기 시작했다.
성막에서는 속죄제, 화목제, 번제, 소제, 속건제가 드려졌으며 상번제가 드렸다.
모든 죄인은 이 곳에 찾아와 양과 소와 염소와 비둘기와 고운 가루로 죄사함과 하나님의 은총을 구했다.
성막은 4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불기둥과 구름기둥의 인도와 보호를 받으며 이스라엘 백성의 진 중앙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어주었다.
모세가 죽자 가나안 땅의 정복은 그 후계자인 여호수아에게 위임되었다.
가나안 땅은 약속하신 대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나누어졌고, 광야를 방황하던 백성들의 성막은 아름다운 성전으로 예루살렘에 자리잡기에 이르렀다.
다윗이 성전을 짓기 전에 지역적, 정치적 갈등 해소를 위한 마지막 대정복이 있었고, 성전을 지을 수 있을 만큼 많은 재화가 저장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솔로몬이 유대 땅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했다.
그 성전에서도 여전히 번제와 속죄제와 속건제, 화목제, 소제가 드려졌다.
번제단과 물두멍과 성소의 향단과 떡상, 촛대와 지성소..... 일일이 다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신비롭고 위대한 성전이었다.
그들은 수많은 세월 동안 그성전을 중심으로 살아왔다.
삶과 죽음과 내세의 구심점이었던 성전은 이스라엘 민족의 생명이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성전은 눈에 보이는 하나의 건축물 내지 호신부(護身符)의 차원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백성들이 무례와 범죄는 늘어만 갔고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 경배도 차츰 소홀해져 갔다.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수 많은 경고를 해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은 점점 더 강퍅해져 갔다.
때로 성전은 북이스라엘의 손에 훼파됙도 했고, 앗수르와 바벨론 등의 열강에 침노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백성들은 깨닫지 못하고 더욱 더 패역의 길을 걸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성전을 몰수하시고 말았다.
아름답게 꽃피던 유다 왕국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이끄는 대군의 침공 앞에 처참하게 유린되었고, 성전은 불에 타 소멸되었다.
그들은 하나님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곳을 잃고 만 것이다.
7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바벨론의 각처에 포로가 되어 흩어져 살던 무리들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역사의 경륜에 힘입어 황폐한 성읍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힘을 다해 수많은 대적들의 위협을 이겨내고 초라한 성전을 세웠다.
성전을 바라보는 늙은이들ㅡ옛날 이 곳에 우뚝 서서 위엄과 영광을 자랑하던 솔로몬의 성전을 기억하고 있던 사람들ㅡ이 애통하며 통곡할 정도로 볼품 없는 성전이었다.
이름하여 스룹바벨의 성전! 끊겼던 제사가 이 곳에서 다시 드려지기 시작했다.
수많은 양과 소와 염소와 비둘기들이 제산을 피로 적시며 죽어갔다.
그리고 그 죽음의 뒤편에는 언젠가 이 땅에 오셔서 수많은 인생들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실 분의 그림자가 비치고 있었다.
바벨론에서 돌아온 사람들은 짧지 않는 기간 동안 그들 나름대로의 삶의 기반을 잡았던 사람들이었다.
요즘으로 말한다면 제법 살 만한 평수의 아파트도 마련했고, 아이들도 8학군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투자해 놓은 증권도 날마다 상종가를 치고, 지역에서도 유지급으로 행세할 정도로 안정된 인생을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고토로 돌아가자는 사발통문이 돌기 시작했다.
돌아가자는 이유는 오직 하나! 거기에 하나님이 약속 하신 땅이 있고 성전 터가 있으므로 오직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아파트도, 자녀의 교육도, 증권도, 재형저축도, 명성도, 산해진미도, 상류사회의 멋진 생활도 다 버리자는 것이다.
그 땅은 옛날의 풍성하고 영화로운 땅이 아닌데도 말이다.
70년 동안 폐허가 되어버린 땅, 가시와 엉거퀴, 시랑과 올빼미의 처소, 성전은 다 무너지고 당장 살 만한 집 한 채 없는 그야말로 황량한 땅으로 가자니!
가야 할 것인가, 아니면 눈 질끔 감고 그냥 여기서 여생을 보낼 것인가?
가는 순간부터 고생길에 접어들 것은 뻔한 이치이고 고토로 돌아가자면 바벨론을 출발하는 순간부터 험난한 가시밭길을 가야할 것이 분명했다.
아마도 이 문제를 놓고 숱한 가정에서 부부싸움을 벌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바벨론에 이루어 놓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조상의 하나님 한 분만을 생각하며 주변을 정리한 사람들이 있었다.
"돌아가야 한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돌아가야 한다. 하나님 없는 부귀영화가 무슨 소용이 있으며, 바벨론에서 누리는 모든 것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돌아가자."
70년 세월 동안 번성하여 불어난 사람들까지 감안하면 그 숫자가 엄청날 텐데 세 차례에 걸쳐 돌아온 사람들은 10만 명이 채 되지 않았다.
그들이 아무 것도 없는 폐허 위에 세운 성전은 진정한 신앙의 열매였다.
그리고 예수님이 오시기 얼마 전, 에서의 후손인 유대의 통치자 헤롯은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한 정치적 목적으로 이 성전을 아름답고 웅대하게 재건하기 시작했다.
믿음 없이도 위대한 성전을 건축할 수 있다는 이 모순의 대역사가 46년 만에 끝나고 마침내 웅대한 성전이 예루살렘에 완공되었다.
이 땅에 성육신하신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한신 어느 날, 제자들과 바리새인들과 함께 성전을 거니시던 예수님이 이 성전을 보셨다.
바리새인들은 46년간 지은 이 멋진 성전을 자랑했다.
그때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반문했다.
"이 성전은 46년 동안 지었거늘 네가 3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그러나 예수님은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었다.
성경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및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고 말하고 있다.
성전이라는 건물에 의존하여 수 세기를 살아왔던 이들에게 놀라운 대전환의 드라마가 시작된 것이다.
예수! 바로 그가 참 성전이시다.
지금까지 보아왔던 성전과 기명과 물두멍과 향단과 지성소는 모두 참 성전으로 오실 예수님을 예표하면서 역사의 흐름 속에서 버텨왔던 것이다.
이제 예수님을 만난 자는 누구든지 번제를 드린 것과 같다.
예수님을 만난 자는 화목제를 드린 자가 되었으며, 속죄제와 속건제와 소제를 포함한 완벽한 제사를 드린 것이다.
모세 때 성막으로 시작하여 예루살렘에 자리잡았던 성전은 이제 그 기능을 다했다.
예수님이 완성된 성전인 육체를 가지고 이 땅에 오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성육신하신 예수님으로 성전이 끝나버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았던 예수님의 육체만이 성전이었다면, 후세의 우리는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엄청난 비밀의 클라이막스를 또 하나 예비해 놓으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령을 주시기로 약속하셨고, 그 약속대로 오순절 날이 이르러 마가의 다락방에서 힘을 다해 기도하던 120문도들에게 불 같은 성령이 임하셨다.
그리하여 오늘 이 시간까지 택하신 자녀들을 성전으로 삼으시고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게 된 것이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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